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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터와 연예계 '파파라치' 사진은 어떻게 나올까?
    기자들 떠들다/scoop desk 2012. 3. 20. 03:30


    JYJ 사생팬 폭행 보도를 계기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수많은 악플들, 트위터로 쏟아진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 그동안 '파파라치'로 낙인 찍힌 연예기자로서의 회의는 어쩌면 가벼운 고민이었는지도 모른다. 매체들은 물론이고 연예계란 큰 생태계 안에서 가슴에 와 박히는 고립감. 그 와중에 문득 언젠가 읽었던 영화리뷰를 떠올렸고 '뱅뱅클럽'을 봤다.

    분쟁지역을 누비면서 퓰리처상을 거머쥔 전설적인 사진기자들이 주인공인 영화. 총질이 난무하고 피가 튀기는 현장을 용감무쌍하게 누비는 기자들에게서 감히 무엇을 얻으려 했을가. 굳이 억지로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했던 것은 아닌가.

    극히 주관적이지만 '본질은 같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작가는 방송인터뷰에서 '좋은 사진은 어떻게 나올까요?'란 질문을 받는다. 즉답을 하지 못하는 사이 영화는 과거속으로 빠져든다.

    기술적으로 좋은 사진에 대한 답은 영화 초반에 이미 등장한다. <망원렌즈는 됐어. 여기서는 가까워야 그림이 사니까...> 아마도 수많은 사진기자들이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이 아닐까. 역으로 좋은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은 그만큼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진리도 있지 않은가. 

    필름을 아끼지 않아도 되는 디지털카메라 시대의 보도사진은 확실히 필름시대의 진정성을 잃었다. 그럼에도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것,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는 것까지 사라지진 않았다. 

    한국에서도 시위가 한창이던 필름카메라 시절, 사진기자의 능력 중 하나는 필름을 빨리 갈아 끼우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한컷이라도 더 찍고, 현장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사진기자가 불타는 사람을 칼로 내려치는 순간을 촬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사진편집자에게 고민을 토로한다. 인간적인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고 직업적인 고민이 곧 그 장면을 대체한다.


    <무서웠구나.>
     
    <그래도 사진은 찍어왔어.> (이 말에 감동하지 않을 데스크가 있을까?)
     
    <우리 이 사진 못쓰는거 알잖아. 너무 노골적이야.> (쓰고 안쓰고는 나중 문제다.)
     
    <그럼 난 뭐한건데?> 

    우울한 풍경은 곧 동료들에 의해 반전된다. 

    <네 사진을 AP에 보냈어. 런던으로 보낸대. 오늘 찍은 사진 전부 다 말이야. 이게 무슨 의미같아? 전 세계에 걸리는거지.>  

    고뇌에 빠졌던 사진기자는 곧 동료들과 돈을 외치며 열광한다. 흑인시체를 찍어서 돈을 번다는 비난 따위는 들릴리가 없다. 이들이 진정 열광한 것은 돈보다 자신들의 사진이 전 세계에 걸린다는 성취감 때문이다. 

    비슷한 흥분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 수년전 딱한번 영국 선지에 사진을 넘긴 적이 있었다. 한국에 온 축구스타 베컴을 나이트클럽에서 포착한 사진이었다. 사진값은 당시 회사로 입금됐겠지만 그와 무관하게 우린 영국 선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감격했었다. 만약 우리가 찍은 사진이 전 세계에 걸린다면 지금이라도 돈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한가지 기억을 더 더듬어 진다.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수단의 굶주린 소녀'에 대한 윤리논란은 사실 불타는 사람을 촬영한 사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대학가에서 민주화시위가 한창이던 시절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분신을 시도한 현장 사진이 보도된 후였던가. 일부에서 사진기자들이 촬영에만 열중하고 불을 끌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마도 나중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사진기자는 불을 끄기 전에 그를 뒤쫓으며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까지 받는다. 

    수많은 보도사진을 손쉽게 보는 이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시샘에 찬 동료 사진기자가 퓰리처상을 받은 애송이 후배를 비아냥댄다.

    <무슨 상인지도 몰라. 퓰리처가 뭔지 말을 해주고 나서야 알았대. 재수 좋은거야. 그렇지 않아? 얻어 걸린 거라고.>
     
    <자네도 재수 엄청 좋았어. 불에 타던 남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까. 운도 좋지 칼든 놈도 있었어.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뷰파인더나 쳐다봐야 했겠지. 광량도 확인해야 되고. 그렇지? 나중에 너도 얻어 걸리게 되면 나한테 오라고. 상을 받을만한지 그때 이야기해 보자고.>

    사진팀장이 논리정연하게 시샘하는 동료 사진기자를 쏘아붙인다. 디스패치의 단독보도가 나간 후면 의례적으로 참 다양한 후일담들을 들었다. <개네들은 운이 좋다> <우리도 하면 할 수 있다> 등등.

    그래, 우리도 운이 좋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열애 중인 스타가 눈앞에 나타났다. 운도 좋지 가는 장소마다 스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니저에 스태프에 사방에 널렸는데 우린 카메라를 버젓이 들고 있을 수 있었다. 만약, 우리에게만 이런 일이 있었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진정으로 운이 좋은 매체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경쟁은 발전을 의미하니까. 그때 우리 일의 시비를 가려도 늦지 않을 것 같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애들> <저승사자 같이 무서운 애들> 누군가 디스패치 기자들을 이렇게 이야기 한단다. 그때의 답 역시 절묘하게 영화 속에 등장했다. 끔찍한 현장을 직접 경험한 포토에디터가 사진기자에게 말한다.

    <같은 인간으로 안 보는 거 같아>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사진 찍는거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연예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남보다 다른 기사와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진기자에게는 사진 찍는 거 말고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가 뉴욕타임즈 1면을 장식하고 퓰리처상을 탄다. '뱅뱅클럽' 멤버들의 환호는 순간적으로 지나가고 윤리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독자들이 사진의 결말을 궁금해 한다. 소녀는 어떻게 됐는가? 독수리를 쫓아냈는가? 소녀를 직접적으로 도와줬는가?

    기자회견에 앉아있던 기자들 역시 같은 직업이다. 한 기자가 <그럴 의무는 없다>고 질문공세를 만류한다. 하지만 집요한 여기자는 <언제부터 기자들이 그런 존재가 됐죠?>라고 묻는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여기서 제기되는 윤리문제는 현장에 없었던, 현장을 모르는 기자들의 문제다. 
     
    사진기자는 그들의 공세에 대해 <보도사진가로서의 책임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디스패치 역시 우리의 보도에 온갖 문제점을 들이대는 매체들에게 말하고 싶다. <연예기자로서 책임을 다했을 뿐>이라고.    

    '수단의 굶주린 소녀'를 찍은 사진기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암울한 자신의 미래를 예시하듯 친구에게 고백한다.

    <그 사람들이 맞아. 전부 그러잖아. 이게 우리 일이라고. 사람들 죽어 나가는거 쳐다만 보는게. 그말이 맞아.>

    그의 고백은 현장에 살고 현장에 죽는 사진기자가 세상과 싸우다 지쳐 내뱉은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의 진심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듯 심금을 울리며 전해진다. 

    <좋은 사진은 어떻게 나올까요?>
     
    <저는 잘 몰라요. 인화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좋은 사진이라 함은... 논란이 따르기 마련이예요. 단순한 풍경사진이 아니니까요...>
     
    <저는 분쟁지역에 나가서 나쁜 것을 보게되면. 많은 악행들 말이예요. 사명감이 생깁니다. 사진으로라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요.>  

    영화를 보면 '뱅뱅클럽'이라는 별명은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 제목에서 비롯됐다. 파티에서 '뱅뱅 파파라치'라는 제목을 붙인 잡지를 보여주며 의견을 묻는다. 그러자 한 멤버가 벼락같이 화를 내며 파파라치가 아니라고 외친다. 

    '빅머니'를 위해 사진을 신문사와 통신사에 파는 분쟁전문 사진기자 입에서 '우린 파파라치가 아니다'라는 외침이 들리는 것이다. 왜일까? 그것은 바로 사명감 때문일 것이다. 비록 피의 사진들을 팔며 살아가지만 그들이 아니면 우린 그 현장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디스패치도 오랫동안 외쳤다. 파파라치가 아니라고. 한국 언론구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찍은 사진은 거의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것이다. 돈을 받고 사진을 팔아먹기 위해 현장을 나간 적은 결코 한번도 없다. AP에 사진을 넘겨서 전세계에 실릴만한 스타 역시 한국엔 아직 유감스럽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터와 연예계, 거듭 말하지만 감히 그들을 우리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기엔 너무도 부끄러움이 많은 줄 안다. 하지만 그들이 일하는 현장이나 우리가 일하는 현장이나 치열함면에서는 비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편안한 현실을 사는 기자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에 디스패치 같은 매체 하나쯤 있는 것. 이를 통해 평소 접하기 힘든 스타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것. 이를 위해 막연한 사명감 하나로 고생을 스스로 감수하는 기자들이 있다는 것. 이것이 그토록 이해하기 힘든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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