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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의점 알바와 마주칠 때마다 생각날 여자?
    기자들 떠들다 2022. 12. 26. 04:38

    어디 있었더라?’ 체한 듯 답답해진다. 기억력이 죽었을 땐 몸으로 움직여야 한다. 하나하나 뒤져 보는 수밖에.

     

    수납장에 숨어 있던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놓듯이. 이렇게나 많은 잡동사니가 있었다고?

     

    수납장 두 칸을 버리지 않은 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일단 바닥에 던져 놓는다. 이상하게도 찾고자 하는 물건은 가장 늦게 정체를 드러낸다. 확률게임인데도 그렇다.

     

    버릴까? 말까? 무너져 뒤죽박죽된 책들도 심란해 보인다. 벽 구석 한쪽에 쌓는다. 20권 남짓 두 줄로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

     

    편의점 인간’(무라타 사야카 지음). 2016년 일본 아마존 1! “아쿠다가와 역사상 최고의 작품

     

    웬 소설? 책을 살 때 소설만큼은 피했다. 미련 남은 글쟁이 오기랄까. 혹시나 언젠가 표절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도 팔자다. 소설 쓰는 날이 죽기 전에 오겠니? 솔직히 부러우면 견디기 힘들기 때문 아니었을까.

     

    펴낸날 초판 12016111, 초판 142016127. 수납장에 갇혔다면 적어도 1년도 더 됐을 일이다. 어쩌다 6년 만에 발견돼 여기 있는지 모를 일이다.

     

    191페이지, 가볍다. 단숨에 읽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루를 넘기기 힘들 정도로 매번 들르는 편의점 이야기였으니.

     

    계산대에서만 잠시 마주친 편의점 알바들. 먼 가족보다 이웃보다 더 자주 마주쳤을 그들. 그럼에도 궁금한 적도 없었을 존재들.

     

    일자리 없는 이들이 언제 거쳐 가도 좋을 곳. 알바가 완벽한 기계 부속품처럼 쓰이는 곳. 자신이 남들과 다름을 자각한 주인공은 편의점에 은닉해 규격 된 삶으로 위장한다.

     

    그나마도 18년 만에 위기를 맞는다. 편의점 알바를 그토록 오래 한다는 게 사회의 규격에 맞지 않음으로. 때가 되면 여자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한다는 무언의 협박과 폭력.

     

    주인공은 한 남자와 거래를 한다. 모이(식사)를 주고 재워주는 조건이다. 대신 연애와 동거도 하는 사회가 원하는 여자로 인정받는다. 정작 자신에게 최적인 편의점 알바 자리를 위협받으면서까지.

     

    나는 줄곧 복수하고 싶었어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기생충이 되는 게 용납되는 것들한테. 나 자신이 기생충이 되어주겠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오기로라도 후루쿠라 씨한테 계속 붙어살 겁니다.”

     

    (돈과 권력) 있는 남자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여자를 모두 뺏겼다고 생각하는 남자. 남녀란 선사시대 이래 달라진 게 없다는 비쩍 마른 루저. 그런 남자조차 성적으로 조금도 관심 없는 편의점 알바.

     

    남자가 내뱉는 말들은 우연일까? ‘욕망의 진화’(데이비드 버스 지음) 속 주장들과 흡사하다. ‘진화심리학속 수컷과 암컷처럼. 유전자를 대물림할 수 없었던 존재들은 우리 조상이 되지 못했다던가.

     

    큰일이다. 편의점 갈 때마다 일본도 아닌데 그녀가 있는 듯 하다. 640밀리 페트병 소주 한 병, 살찌기를 거부하려 선택한 맛없는 안주 한 두 가지. 봉투 한 장 주시고 테리아 블랙맨솔(전자담배 스틱) 두 갑!

     

    혼술을 위해 들른 편의점. 아시아 어느 국가에서 왔을 알바가 익숙하게 봉투에 물건을 담는다. 소설 속 그녀가 일했던 편의점 동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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