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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전 소설을 썼었다...단편소설 스크랩
    기자들 떠들다/scoop desk 2010. 12. 25. 03:06


    가끔 사람들이 신춘문예를 했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너무 글팔아 먹는 일에 애쓰며 살아오지 않았나 잠시 고민에 빠지곤 한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감히 소설을 쓰고자 하는 용기도 없지만...

    이젠 밤새 소설을 썼던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바둥대는 꼴이 스스로 안스럽다. 한때 소설을 썼음을 믿지 않는 후배들을 위해 글을 공개해 본다. 아마도 이게 3번째 썼던 단편소설이었던가. 1997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운좋게도 당선됐던 작품이다. 심사위원은 이미 고인이 되신 <관촌수필>의 이문구 선생이셨다. 누군가 그랬다. 혹? 집안 어른이라 그냥 뽑아준 게 아니냐고...
     
    [단편소설] 스크랩
     
    아침마다 출근을 해서 한 뭉치의 조간신문을 챙겨든 지 만 3년이 됐다.
    가위, 칼, 자, 딱풀. 이것들은 분신처럼 내 곁을 그동안 따라다녔다. 내가 때가 묻어가듯 이것들도 때가 묻어가야 했을 텐데, 오히려 그것들은 자신의 모습들을 잃어갔다. 눈금이 완전히 지워져 투명해져 버린, 자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잃어버린 채 반듯한 플라스틱으로만 남은 자 아닌 자와 노란 색 페인트 도장이 벗겨져 녹이 슬어 가는 도루코 칼. 그 중 가위만 멀쩡해 보였지만 이빨은 역시 무뎌졌다. 딱풀 만이 수없이 닳고닳아 내 처지를 닮아 갔지만 그들은 다 소모되고 나면 항상 새로운 식구로 교체되고 해서 깊은 애정은 가질 수 없었다.

    두 개의 지방신문과 세 개의 중앙지 그리고 두 개의 경제신문이 오늘도 변함없이 사무실 문 앞에 수북히 쌓여 있다. 가지런히 펼쳐놓은 신문 1면엔 한결같이 눈 내린 도시 풍경을 큼지막한 사진으로 싣고 있었다. 눈의 하얀 색깔이 머리 속도 하얗게 비워냈기 때문일까. '무엇부터 할까'라는 막연한 생각에 빠져본다. 할 일은 한가지밖에 없었는데 무엇을 할지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난 '스크랩맨'이다. 내가 붙인 명칭이다. 스크랩을 하는 남자. 대기업쯤으로 치면 홍보실이나 신문사 조사부 같은 곳에나 가봐야 있을 법한 직종이었다. 하지만 정작 난 그런 직종이 정말 있기나 한지 때때로 몹시 궁금했다. 만약 있다면 동종 업무에 종사하는 그 누구라도 한번쯤 만나고 싶었다. 조금은 직업적인 외로움을 덜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출근을 하면 난 말 그대로 하루종일 신문 스크랩을 하는 것이 내 일과의 전부였다. 경제분야. 좀 자세히 말하면 돈이 될만한 부동산이나 세금 관련 기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는 것이 내 밥벌이였다.

    "하루종일 신문이나 보고 스크랩만 하면 땡이란 말이지? 일은 네가 정말 잘 찍어 놨구나. 만고강산 아냐."

    이 일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 가까운 친구 놈이 던진 말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취업이었다면 그야말로 만고강산이 백번은 피고 질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겐 일 자체가 편하다 해도 만고강산 일순 없었다. 대학을 제적당하고 만 2년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932편의 비디오를 보고 나서 얻은 일이라 부담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그 일은 구한 것이 아니라 구걸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처가 직장에 다니며 날 먹여 살리는 모양새를 보다못한 처남이 마련한 일자리가 바로 '스크랩맨'자리였다. 그렇다고 늘 가시방석 같은 자리만도 아니었다. 그저 나는 텅 빈 성을 지키는 망국의 병사처럼 빈 사무실에 앉아서, 무료함과 수없이 많은 활자들 속에서 산다는 것의 낙을 찾아야하는 어려움이 좀 있었을 뿐이다. 
    첫 출근을 하기 전날 밤 처는 내게 말했다. 

    "당신이 잘난 건 대학에 다녔다는 것 뿐이야. 그것도 나한테서나 잘난 거지. 요즘엔 대학? 그까짓 것 병신만 아니면 다 들어가는 곳이라고. 내가 미친년이었지."
    "... ..."

    난 처와 대화할 땐 언제부터인가 웬만하면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응하지 않는 것, 그것은 어느덧 내게 익숙한 의사 표현법이었다. 모든 것을 수긍하겠다는 백기의 의미 같은 것이다.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을 때도 난 그렇게 해버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미련한 짓이었고 흠씬 두들겨 맞기만 했다. 대화를 피하면서도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불가능한 일을 난 종종 실험해 본 것이다. 여하튼 아내의 말에 난 묵묵부답이고 싶었다. 하지만 수긍의 의사는 당연히 전달되지 않았고 처는 경찰들처럼 참다못해 나를 손이나 발로 툭툭 쳐대며 대답을 재촉했다. 답답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같은 속성과 같은 반응을 보이므로해서 어쩔 수 없는 동종임을 드러낸다.

    "명문대면 말도 안 하지. 꼴에 졸업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다행이었겠어. 오빠가 날 봐서 해주는 거야. 이번엔 가야돼! 알았어? 안가면 정말 끝장 볼 줄 알아. 한푼이라도 벌어야 먹고 살 것 아냐."
    "... ..."

    처의 말은 반쯤 아니 완전히 옳았다. 나 같은 놈은 결혼 같은 것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를 그녀 가족을 위해서, 최소한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녀를 만난 것은 제대 후 복학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감옥에서 출감한 선배 한 명이 학교로 찾아 왔었다. 출소기념주 겸 해후의 축배를 들러 그와 내가 학교 앞 맥주집으로 간 날이었다. 맥주 집에는 손님이 꽤 많았고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한패의 여자들 바로 옆 탁자에서 그와 난 술을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에 잇는 중소기업에서 경리로 근무하고 있던 그녀는 그 날 친구들과 함께 바로 그 옆자리에 끼어 있었다. 

    끝물. 그때를 나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피가 끓어오를 것 같던 무더운 시절들도 지나가고 온 세상을 뒤덮어 휩쓸고 갈 것 같던 거대한 물결들도 다 빠져나가고 없었던 뻘 같은 세상. 그래서 온통 감각적인 새롭다는 개념만 존재했던 때였다. 그럼에도 선배와 나는 그 끝물을 붙잡고 멀리 씻겨 나간 채 뻘만 바라보는 위험스런 관망자였다. '호기심', 때로 그것은 사람을 구렁에 몰아넣는다. 내 처의 경우처럼. 처는 나와 다섯 살 차이가 났다. 그때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사회의 미숙아였다. 그녀가 우리의 술자리에 먼저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소녀 티와 약간의 불량기가 뒤섞인 얼굴과 외양을 갖고 있었다. 아마도 그 호기심은 말 잘하는 선배의 잡다한 세상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선배는 말재주가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연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는 약장수 같은 유머와 웅변가 같은 설득력을 지닌 힘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때문에 술자리에서 종종 선배는 주변을 흡입하는 능력을 발휘하곤 했었다. 

    "전,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봅니다. 민중은 항상 살아 숨쉬니까요. 문민정부가 됐다고, 동구가가 붕괴됐다고 변한 것은 없습니다. 절망만 할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길을 걸어갔지만 변절은 변절일 뿐이고 진리는 나중에 검증될 것입니다. 우린 그렇게 살 수 없어요. 어차피 세상은 변하는 것이니까요."

    콩밥이 효과가 없었는지 선배는 정말 달라진 것이라곤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론적인 토대는 더 강해진 것 같았다. 그의 화려한 너스레는 그녀를 반쯤 넋 나간 사람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는 훌쩍 일어나 술자리를 떠났다. 빈자리를 둔 채로 그녀와 나는 술을 계속 마셨다. 선배가 떠나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자리를 떴어야 할 분위기였다. 그랬다면 나와 그녀는 그대로 남남이 됐을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선배의 이야기를 이해했는지 몰랐지만 술은 서로 만사형통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80년대의 향수를 팔아먹은 운동권의 잡다한 얘기를 소재로 쓴 소설을 몇 권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후줄근한 선배와 나의 술자리, 진부한 넋두리 같은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이유는 많지 않았다. 첫 만남부터 낭패를 당했다. 조금 부족했던 술값을 흔쾌히 대신 낸 그녀는 전화번호나 연락처를 내게 물었다. 전화가 없었던 나는 조그만 메모지에 학교와 학과 이름을 적어 전해 주었다.

    그것이 그녀와 나의 연결고리이자 시작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는 단지 대학생이라는 사실만으로 내게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처는 또래의 보통 여자아이들처럼 생각보다 냉철하고 모질지가 못했다.

    몇 번 만남을 거듭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쥐뿔도 없는 나의 환경과 처지를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나 그녀는 왠지 물러서지 않았다. 호기심에 이어 선택의 실수를 그녀는 연이어 저지르고 만 것이다. 제대 후 혼돈에 시달리던 나는 그녀로 인해 잠시나마 안정을 찾았다. 여자가 생기는 것처럼 현실에 절박하게 눈떠야 하는 일은 없었다. 그동안의 삶과는 달리 난 평범한 일상을 쫓게 되었다. 처는 자주 자취방에 찾아와 머물렀다 가곤 했다. 어느새 우린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오랜 시간을 가로질러온 연인들처럼 변해갔다.

    임신. 꽤 많은 남녀들이 이것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묶여지고 잇다. 그녀와 나 역시 그랬다. 그녀가 임신만 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적당한 추억 속에서 서로를 지울 수도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했을까. 처가는 생가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집안이었다.

    한 친구가 함을 팔던 날 술에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로 내게 불쑥 물었다.

    "너 아직도 빨간 색이냐? 이젠 너도 세상을 알게 될 거다. 그런 색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살기 힘든 게 세상인지 말이야."

    그 친구는 6개월 방위를 받은 탓에 졸업을 벌써 해버리고 관상으로 입사하는 이상한 대기업에 보란 듯이 다니고 있었다. 어릴 적 친구가 아니라면 딱히 보고 싶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왜냐면 그는 예전부터 너무 얄미울 정도로 어느 일이건 최대한 효용을 발휘하는 쪽만을 선택하는 탁월한 혜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그것은 영락없는 기회주의자의 표본에 지나지 않았다. 난 속엣 말로 '지금 빨간 건 술에 취한 네 얼굴이다'라고 중얼대며 불편한 감정을 눌러 앉혔다.

    복이었다. 결혼 때를 생각하면 내겐 다시없는 복중에도 대복이 아니었나 싶다. 처가는 대학생 사위를 본다고 조금은 들 떠 있었다. 빈털터리였던 내가 그나마 대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 행운이 내게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처가가 돈 좀 있는 집치고는 자식 농사가 잘 안돼서 4남매 모두가 고등학교를 간신히 마친 집안내력을 지닌 까닭이었다.

    장인은 막내 사위나마 대학생이라는 사실 하나에 꽤 흐뭇해 하셨다. 그리고 졸업만 하면 취직은 걱정 말라고 다독거려 주시기까지 했다. 결혼식 날 홀로 나를 키워내신 어머니는 울기만 하셨다. 어머니 역시 무반응, 아니 말은 필요 없는 격정의 순간이셨던가 보다. 경찰서에 두 번 출두하신 날에도 어머니는 울기만 하셨다. 뭐라고 소리치고 혼내고 하였으면 덜 미안했을 텐데 어머니는 그때도 울고만 계셨었다. 물론 두 번 모두 단순 가담혐의와 운이 좋았던 이유로 난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그런 당신의 아들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크게 잘못되지 않은 이상 다시 앞날을 잘 풀어갈 것이라고 믿으셨던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부잣집으로 장가드는 아들을 보면서 그 신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꿈처럼 감상하고 계신 듯 했다.

    처가의 도움으로 난생처음 닭장 같은 자취방을 빠져나와 15평 짜리 아파트에 신혼 살림을 차렸을 땐 삶이 이렇게까지 윤택해질 수도 있다는데 몇 번이고 난 놀라곤 했다. 장인은 축의금으로 들어온 돈의 일부를 떼어내서 1년 간의 생활비로 마련해 주셨다.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남은 학교생활이나 잘하라는 배려였다. 무지개가 짧은 이유와 사탕이 입안에서 빨리 녹는 이유 따위를 생각했던 것은 신혼 생활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행복의 연속적인 상태가 나에겐 얼마나 지속될 지에 대한 의문과 불행이 닥치면 어쩌나 싶은 우려로 머리 한구석에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아까 전화 왔었어요."
    "누군데?"
    "왜 있잖아요. 전과자 선배."
    "뭐?"
    "오빠랑 처음 만날 때 말이 청산유수 같던 남자요. 재승이라든가."
    "재.승. 임재승 선배? 임선배가 왜?"
    "내가 어떻게 알아요. 없다니까 그냥 끊던데. 감방이나 갔다온 사람들이 선배며 친구라는 걸 창피해서 어딜 가서 얘길 해."

    처는 결혼 생활을 한지 두어 달만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집안에 갇혀 지내다보니 일상에 대한 권태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 같았다. 아침 8시에 학교로 가서 도서관에 있다 밤 11시가 돼서야 귀가하는 내가 무척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또 더욱 그녀를 괴롭게 한 것은 이질감이었다. 아파트 내 다른 집 남편과는 다른 나.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그녀의 스트레스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 역시도 그녀에게 표현하지 않았을 뿐 사냥꾼에 쫓기는 동물의 심정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곤 했었다. 처자식이 딸린 이상 어떤 직장이든 잡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시달렸던 것이다. 그 이유로 학교에서 난 취업 공부벌레로 전락해 있었다.

    '임재승. 선배는 결혼식 때 나타나지 않았다. 처를 보면 깜짝 놀랄 것이라는 말을 꼭 전해다랄고 연락이 닿을 듯한 다른 선배들에게 당부해 놓았었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어느 공장에서인가 또 한바탕 일을 벌이고 있을 것이라고만 했다.'

    "다시 전화한다는 소리 없었어?"
    "내가 어떻게 알아요?"
    "왜 화만 내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나? 그리고 전과자가 뭐야 선배한테."
    "왜 틀린 말했어요? 사실이잖아요. 어떻게 아는 사람들이 정상이라곤 없어."
    "... ..."

    아내와 더 말을 끌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폭발직전의 위험한 감정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대꾸를 포기하고 책 한 권을 들고 거실 한쪽에 누웠다. 무엇이든 집중해서 감정을 풀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활자는 눈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크기로 가물거리기만 했다. 그때 식탁앞에 있던 그녀가 달려오다시피 다가와 책을 세차게 집어던져 버렸다.

    "집에 와서는 제발 티 좀 내지 말아요. 책을 다 불질러 버리기 전에. 지금 책이 눈에 들어와요?"
    "정말 왜 이러는 거야? 참고 있으려니까 너무 하잖아."
    "너무해요? 내가? 너무한 건 당신이야.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 잘난 대학 하나 다니면서 나에게 시간 주기가 그렇게 아까워요? 우리가 결혼해서 한 일이 뭐가 있어요? 왜 이젠 내 몸에 손대기도 싫어졌어요? 학교에 가면 대학생 여자 애들이 얼마든지 있어서?"
    유치하다는 생각이 설핏 들었지만 그녀를 이해해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유야 어떻든 처가 말한 것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하지만 입에선 변명부터 먼저 나왔다.
    "임신 중이었잖아. 미안해. 신경 못 써서."
    "임신? 상식도 없어요. 어떤 집은 8개월 때까지도 한 대요. 핑계대지 말고 애정이 식었다고 해요. 결혼 후회되죠?"

    처는 화가 나면 나와의 일 거의 모두를 대학과 결부시켜 트집을 잡아내곤 했다. 그녀의 목소리 톤이 자꾸 올라가면 갈수록 난 편협되게 한쪽 구석으로 생각을 몰고 갔다. 따지고 보면 환경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사실이었다. 대상과 상대가 바뀌었을 뿐 여전히 난 삶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고, 나를 짓누르는 것들도 분명 실재해 있었다. 결혼과 함께 달라진 것은 오히려 내 자신이었다. 취업에 목맨 대학교 4학년의 모습 속에서는 어느 틈에선가 쫓기고 있거나 거리에서 떨고 있을 과거 속의 동료, 선배, 후배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부자도 아니었으면서도 부잣집 사위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난 어느새 심리적 물질적 안정에 잔뜩 취해 있었다. 밤새도록 울 것 같은 아내를 간신히 달랬다.

    아내의 배가 제법 불러오고 있었다. 이런 저런 갈등도 많았지만 난 여전히 도서관과 집을 오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임선배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나다. 아침에 전화 하니까 있구나."
    "언제 또 전화했었어요? 참, 어디 있어요? 어디서 뭘 하구 지내는 거예요."
    "아니, 지난번에 한번 연락하니까 없더구나. 신혼 재미는 좋니? 오늘 나, 가면 술 한 잔 사줄래?"   

    갑작스러웠지만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단단한 술상을 부탁했다. 그러나 저녁시간이 지나고 아내가 기다리다 지쳐 안방으로 들어가 잠이든 자정 무렵까지도 선배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마냥 앉아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온갖 잡생각들이 기어 나오려 했다. 소주 한 병을 먼저 따서 독작을 시작하고 난 후 새벽 3시경이 돼서야 적막하기만 하던 거실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선배였다.

    "무슨 일 이예요? 좀 일찍 오지. 지금이 도대체 몇 시야. 난 이제 결혼한 몸 이예요."
    "미안하다. 네 처 보기가 민망해서 조용히 왔다가 신세 안 지고 가려고 그랬지."

    선배는 전작이 있었다. 일터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지 얼굴 색이 거무스름하게 보였다. 분명 말못할 사정을 가지고 잇는 듯 싶었다. 그러나 난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도 대답해 줄 사람도 아니었고 또 내가 선배의 일을 안다는 것은 비밀유지 차원에서도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술이 몇 순 배 돌아가면서 애써 선배와 나는 일상적인 대화를 유지하려고 신경을 썼다.

    "살아보니까 어때? 재미있지?"
    "이제 그만하죠. 나 많이 변했죠. 이렇게 사는 거 선배 마음에 안 들죠? 욕해도 뭐 내가 할 말은 없어요. 하지만 선배가 나 잘 알잖아요. 어차피 난 대가 약한 사쿠라였어요."
    "쓸데없는 소리 말아. 변화란 좋은 거야. 그것을 위해서 모두가 싸워온 거 아냐?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술이나 마시자."

    선배는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제일 처음 함께 술을 마신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금테 안경에 여자 살결 같은 고운 피부와 얇고 가냘픈 얼굴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생활은 전혀 반대였다. 누구보다 다혈질이었고 결벽증 환자처럼 잘못된 세상에 대한 증오가 가득했다. 그런 선배의 성격은 폭넓은 독서와 실천에서 얻어지는 확신으로 굳어져 선배가 4학년이 됐을 무렵엔 학내는 물론 학외에서 조차 얼굴과 이름이 팔려버린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나를 비롯한 후배들은 그가 진짜 '혁명가'답다고 추켜세워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난 선배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저 그를 바라보고 어울리는데 만족하고 말 정도의 인간으로 머물고 말았다. 그와 난 그렇게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사이 같은 관계를 유지해온 것이다.
    조금씩 취기에 젖어 몸이 느슨해지기 시작했을 때 베란다 유리문 밖으로는 하얗게 동이 트고 있었다. 선배가 자리를 털고 불쑥 일어났다. 들어올 때 둘러메고 온 가방에서 운동복 한 벌을 꺼낸 그는 입고 있던 옷과 바꿔 입었다. 거실에서 옷을 갈아입기가 멋쩍었는지 슬쩍 웃음을 던지며 말했다.

    "사람들이 운동 할 시간이 됐잖아. 나도 조깅이나 해 보려고."
    "아침이라도 먹고 가야지. 갑자기 술 먹다 무슨 조깅이야? 좀 있다 가지 그래요."
    "다음에 또 올게. 남의 신혼집에 빈손으로 도둑처럼 왔다 가서 미안하다."

    그의 말투 속에서 난 알고 있었다. 긴장과 불안이 주위를 휩싸고 있다는 것을. 자리에서 일어나 선배를 배웅하기 위해 아파트 문에 걸린 빗장들을 열었다. 짧은 시간이었다. 문짝이 부서질 듯 '쾅'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동시에 다섯 명의 사내들이 튀어 들어왔다. 선배는 선 채로 붙들려 바로 거실 방바닥에 짓뭉개졌다. 난 팔을 꺾인 채 옆쪽 벽에 액자처럼 붙어 있었다. 한 사내가 안방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갔고 아내의 비명 소리가 새벽을 길게 끌고 울려 퍼졌다.

    악연. 악연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순간적인 일이었지만 두 눈엔 영화의 한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반복해 보는 것처럼 생생히 보였다. 이렇게 큰 불행이 잠시간의 행복을 상치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선배는 내가 상관없는 사람이며 자신만 잡아가면 될 것 아니냐고 거세게 대들었지만 사내들에게 묵살 당했다. 선배는 운동복을 갈아입고 새벽길을 이용해 어디론가 잠수할 예정이었던 것 같았다. 선배는 고개를 떨구고 내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고, 난 겁에 질려 간신히 옷을 추스르고 나와 영문을 모른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처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수갑을 차고 사내들과 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앞집 식구들이 모두 나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연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시간동안 난 이 엘리베이터가 이 세상이 아닌 전혀 다른 지하의 세계로 내려가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공상을 했다.

    세 번째 경찰서 신세였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이번엔 되게 걸린 듯 싶었다. 서에 도착하면서부터 선배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스스로 죄가 없다고 몇 번씩 되뇌고 사내들에게 애원했지만 이번만은 쉽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수없이 반복해서 말하고 16절지 갱지에 손가락에 물집이 생기도록 진술서를 써서 냈지만 사내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똑같은 질문. 알게 모르게 깔고 눌러 젖히는 공포 분위기.

    "노사연. 가수 이름이 아니야. 잘 알 거야. 그걸 얘기해 봐. 술 먹은 것말고. 노동자에 의한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위한 애국청년연대. 네가 학내 조직원이잖아."

    각본이 이미 잡힌 모양이었다. 이렇게 앉아서 당할 순 없다고 입을 악다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묵묵부답일 수도, 모르는 것을 꾸며서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혼자였다면 이대로 들어가도 거리낄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내와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 아기가 있었다. 어떻게든 구멍을 찾아야 했지만 거스를 수 없는 힘의 논리가 건재한 모습으로 엷은 웃음을 흘렸다. 난 진짜 아는 것이 없었고 사내들도 끝내는 내 말을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언론에 난 조직원으로 공표됐고 동시에 학교에서 제적 처분을 받았다. 재판에서 난 나의 활동 내용이 몇 년 지난 오래 전의 일들이고 반성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이 참작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80만에 출소했다. 임선배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8년을 때려 맞았다.

    군 생활을 하며 보초를 설 때면 몇 번쯤 난 내가 기회주의자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임선배를 만나고 난 후부터 열심히 언저리를 맴돌았지만 구속 한번 되지 않고 훈방 두 번에 그쳤을 뿐 다른 동료들처럼 별다운 별을 달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피해 다닌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고 소영웅주의로 치부되는 사고 따위는 치고 싶지 않았다. 군대를 면제받기 위해 입대위기에 몰리면 점거농성이나 파출소 타격을 나서는 이들도 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난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했다. 그런 이야기를 언젠가 선배에게 들려주자 선배는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일축해 버렸었다. 별을 다는 것이 자랑이 된다거나 별이 없다는 것이 투쟁을 소홀히 했다는 증거가 되는 단순한 생각으로 어떻게 변혁을 꿈꿀 수 있냐는 얘기였다. 그러나 난 드물게 이 물에선 군대를 3년 동안 현역으로 조용히 마치고 나온 사람 중의 하나였다. 생각해보면 무의식적으로라도 난 보신을 우선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우연찮게나마 별을 달았다. 그러나 기회주의자라는 생각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왜일까.

    구치소 문을 나서면서부터 난 백치가 되고 싶었다. 이 엄청난 일을 누군가와 다시 얼굴을 마주 대하고 풀어 나갈 일이 고문일 것 같아서.
     
    "매제! 매제!"
    처남이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자 신문들은 아직 손자국 하나 남지 않은 상태로 두툼하게 책상 앞에 쌓여 있었다. 잠시 시간여행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목 뒤가 뻐근하다.
    "지금 나오세요?"
    "예, 뭘 그렇게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어요. 지금 밖엔 눈이 펑펑 쏟아져요!"
    "좀 졸았나봐요."
    "졸다니 무슨 소리야. 매제는 머릴 굴려야지. 딴 생각말고 나랑 돈 벌 궁리나 좀 해봐요. 대학 물 먹었다니까 뭔가 달라도 다를 거라고."
    "... ..."
    "참, 오늘 신문엔 뭐 좋은 얘기라도 하나 났어요?"
    ""미안해요. 아직 못 봤어요. 금방 정리해서 말씀드릴께요."
    "됐어요. 급한 것도 아닌데 천천히 해요."

    세로로 된 종조판 신문은 일해먹기가 더럽다. 이리저리 기사가 퍼즐처럼 흘러서 어떤 땐 스크랩을 하려면 몇 번씩 손을 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신문들은 가로 편집 면이 늘고 편집을 블록화 하다보니 한결 내 일거리는 줄었다.

    '단기자금 운용법, 전원주택 개발 성공사례, 창업가이드 12번째 등등.'

    오늘도 메뉴는 골고루 풍성하게 각 지면에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물론 신문에 난 정보라면 벌써 한물간 얘기가 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그 한물간 얘기도 잘만 빨면 남은 단물이 제법 있는 모양이었다. 특히 급매 부동산이나 경매 물건 따위는 스크랩은 안 하더라도 꼭 챙겨야 할 정보 중의 하나였다. 처남은 간혹 그것들 중에서 몇몇 개를 물어서 짭짤한 재미를 보곤 했다. 단순하게 보면 돈 놓고 돈 먹기였다. 기사를 대충 읽고 스크랩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신문 한 부 당 30분 정도. 7개니까 넉넉잡아도 4시간이면 하루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남는 시간이 생기면 난 주로 신문의 활자들을 빼놓지 않고 하나씩 죽여 나갔다. 시간이 많이 남는 날엔 동정, 부음, 인사난까지도 모조리 훑어보았다. 그러다 보면 퇴근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출소하던 날엔 어머니만이 날 기다리고 계셨다. 두부를 먹고 바가지를 깨고 두 모자는 말없이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서울에 도착해서 시내 좀 들렀다 가겠노라고 말을 꺼냈을 때야 어머니는 내 손에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어 주시며 처가부터 들러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고 인사를 드리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처도 그곳에 있다고.

    용기가 필요했다. 갇힌 세상에서 나와 하릴없이 도심을 활보했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마치 광속에서 흘러가는 듯한 착시를 느낄 정도여서 바깥 세상 자체도 또 하나의 벽으로 가로막힌 감옥 같았다. 장모는 눈도 제대로 안 뜨고 쌀쌀맞게 꼬나봤고 장인은 담배만 피워댔다.

    처갓집 앞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들어갔던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날 용서할 것 같지 않은, 방어를 넘어서 공격에 다다른 타인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유산을 했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충격으로. 난 죄 없이 들어가 죄를 뒤집어쓰고 나온 듯했지만 현실에선 이미 아기를 잃게 만든 진짜 죄인이 되어 있었다. 처갓집을 나올 때 그녀가 따라 나오지 않았다면 그대로 모든 일이 쉽게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난 무슨 일이든 다시 시작할 염치도 없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따라 나섰다.

    "할 말이 없어. 원하는 대로 해. 다 들어 줄게."
    "다시 직장에 다니겠어요."
    의외였다. 헤어지자고 그녀가 말할 줄 알았다.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일을 치렀다고 난 느꼈고, 아이도 없어진 이상 그녀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붙들어 둘 명목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직장에 나가겠다 고만 했다.
    "나랑 계속 살겠다는 말인가?"
    "그럼, 이혼이라도 하길 바랐어요. 어차피 망친 인생이잖아요. 당신은 많이 배웠으니까 다시 시작해 봐요. 생각만 잘하면 잘 살 수 있을 거예요. 당분간은 쉬어요. 내가 벌 테니까. 오빠 친구가 하는 건설회사에 자리가 났어요."
    "미-안-해."
    "그런데 한 가지만 물어 봐도 되죠. 당신 진짜 빨갱이 아니죠?"
    "... ..."

    그 날 밤은 한숨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난 단지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었고 그것을 고치는데 일조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앞줄에 섰던 것도 아니었고 혁명을 꿈꿀 만큼 대가 세지도 못했다. 그런데 내 행위의 흔적들은 끝내 한 사람과의 인연으로 하여금 가정을 허물어 버렸다.
     
    처가 직장에 나가게 된 후부터 난 신문을 뒤적이며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공무원시험 따위는 엄두도 못 냈으므로 운신의 폭은 손바닥보다 작아 보였다. 더구나 대학중퇴도 아닌 제적의 훈장을 달고서는 공장에도 이력서를 들이밀기 어려웠다. 조그만 희망이라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내게 잘된 일이었다. 절망에 빠질 가능성도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난 지쳐갔다. 집에서 놀아본 사람은 하루해가 장편소설이 나오고 남을 만큼 길다는 사실에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난 비디오에 빠져들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하루에 최소한 세 편씩은 빌려 보았다. 그 속에라도 들어가 있지 않으면 방에 있어도 방밖에 나가도 묶여 있는 듯 불편했다. 영화 속엔 스토리가 있고 허구가 있고 때로 거짓말 같은 감동도 있었다. 조용히 들어가 난 평범한 구경꾼이 되기만 하면 됐다. 테이프가 돌아가는 두시간 동안 나는 전지 전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비디오를 보는 시간이 아니면 영락없이 이상의 소설 '날개' 속에 나오는 남편처럼 난 변해있었다. 아내가 주는 백동전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주는 돈으로 비디오를 봤을 뿐 습한 공기에 폐가 상해 가는 생활은 똑같았다.

    "계속 이렇게 살 건가요? 이젠 살림하는 꼴이 정말 잘 어울리네요. 꿈도 없어요?"
    처가 직장 회식이랍시고 술을 마시고 돌아온 어느 날 밥상을 차리던 내게 주사를 부렸다.
    "벌써 1년이 다 돼가요. 무슨 영화감독이라도 하려고 그래요? 비디오를 도대체 몇 개씩이나 끼고 사는 거예요? 내가 뭘 보고, 뭘 믿고 살아야해요?"
    "... ..."
    "말이나 속 시원히 해봐요. 아예 벙어리까지 되기로 했어요? 차라리 살 용기가 없으면 죽어요. 죽으면 죽었다고 생각이나 하면서 살게. 정말 이젠 돌아버리겠어."
    "고-마-워. 이 말을 하는 것 외에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어. 무슨 일이든 알아볼게. 조그만 더 참아 줘."

    이 무렵 처가가 돈벼락을 쳐 맞지 않았더라면 처는 내 곁을 진작 떠나갔을 것이다. 장인은 여력이 있는 대로 변두리 한구석에 땅을 사두었는데 그곳에 개발계획이 터졌다. 안 그래도 먹고 살만한 집이 말 그대로 순식간에 준 재벌로 튀어 올랐다. 그 후로 처의 목은 영원히 꺾이지 않을 것처럼 꼿꼿이 섰다. 처가에서 돈을 당겨쓰는가 하면 직장은 취미처럼 나를 맞대하지 않는 한 방편으로 삼는 것 같았다. 상투적으로 말하는 애증. 그것 때문에 그녀는 나를 자신의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난 자신이 쳐놓은 거미줄에 너무 덩치가 큰 먹이가 걸려서 줄이 끊긴 채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거미. 그 거미가 그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그녀는 추락할 수도 있다고.

    부부의 가치를 상실해가던 처와 나는 처가의 횡재 덕에 아무 일 없는 것처럼 1년을 더 부대껴 살아갈 수 있었다. 난 간간이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버는 돈으로 내 소일거리를 했고, 그녀는 가끔씩 생활비를 텔레비전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난 큰 먹이는커녕 내 자신이 한낱 미물에 불과했음을 알았다. 그녀를 추락시키는 것은 고사하고 먹이로 잡혔다가 사육 당하는 바보 같은 사냥감.

    사육 당하던 어느 날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처가 좀 밝은 얼굴로 일찍 귀가했다 싶은 날이었다. 그녀는 오빠가 내 일자리를 마련해 줬다고 막힌 속이 뚫린 표정으로 시원하게 말했다. 내 자존심 따위는 이미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첫 출근을 했다. 처남은 장인이 돈벼락을 맞고 난 후 부동산컨설팅 회사를 차렸었다. 급매와 경매 물건을 좀 다루고 약간의 사채놀이도 겸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회사라고 말하기보다는 소규모 사무실이라는 표현이 적당했다. 장인건물의 한 구석을 개조해서 차린 처남의 회사는 응접용 소파세트 외엔 별로 눈에 띌 것이라곤 없이 황량해 보였다. 처남은 내 첫 출근에 맞춰서 책상과 의자를 새로 주문해 비닐도 뜯지 않은 채 한쪽에 보란 듯 전시해 놓았다. 중국집에서 팔보채와 고량주가 배달됐다. 처남은 술잔을 기울이며 될수록 거창하게 자신이 하는 일들을 떠들어댔다. 

    "그런데 매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요? 이 바닥 일도 좀 전문적인 거라 아무나 하긴 어렵거든. 뭘 해야 좋을까?"
    그때 문득 눈에 보인 것이 하필 왜 탁자에 깔아 놓은 신문이었을까. 공짜 밥을 빌어먹을 순 없다고 생각하던 난 내 일을 필사적으로 만들어 내야 조금은 마음이 놓일 듯 싶었다.
    "요즘엔 정보가 돈이라는데 제가 그런 걸 좀 모으면 어떨까요?"
    "정보요?"
    "뭐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요. 신문이나 잡지 같은데서 부동산이나 금융 관련 기사 같은 걸 모으는 거예요. 이곳에서 두고 보면 좀 유용할 듯 싶은데요."
    "하! 정말 배운 매제라 다르구먼. 좋은 생각이야. 필요한 건 저기 미스리에게 말해요. 다 준비해 줄 거야."

    매제는 침을 튀기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뒤 술잔을 시원스레 다시 비워냈다. 그렇게 난 내 구멍을 파고 들어앉아 스크랩을 시작하게 되었다.

    3년이 흐른 지금. 사업은 좀 덩치가 불어서 전화를 받던 여직원 한 명에 불과했던 사무실엔 경리겸 비서 한 명과 밖으로 뛰는 남자직원 3명, 처남과 나를 포함해 총 7명이 일을 하고 있다. 지난 3년 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변함 없이 해 온 내 스크랩뿐이었다. 어떤 일이든 자신에겐 힘들다면 힘든 일이 될 수도 있었지만 남의 눈엔 그렇지가 못하다. 가끔은 직원들이 눈치를 주기도 했었다. 단순히 출근해서 하루종일 신문이나 뒤적이다 퇴근하는 내가 그들에게는 못마땅해 보이고 건달처럼 보였나보다. 또 한편으로 사장의 집안 식구로서 감시자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월급도 제일 많이 받았다. 하지만 누구도 내 앞에서 대놓고 행동하진 못했다. 나는 사장의 매제였으니까. 도저히 찰 것 같지 않던, 한쪽 벽에 조립식으로 세워 놓았던 서가는 이제 스크랩북으로 반 이상이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세월이었고 내가 살아있었다는 증거였다.

    오리고 잘라내고 풀칠하고 날짜와 신문명 표기하고 일을 손에 잡고 있긴 했는데, 넋 나간 것 같던 정신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일을 늦게 시작해서였을까. 밖에 눈이 내리고 있어서일까. 사무실 안은 침침하기만 하다. 어제에 이어 내리는 눈이 심상치 않은가 보다. 벌써 또 하루가 갔나 싶다. 찌뿌드드해지는 허리를 한번 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색 반투명 유리된 사무실 문이 열렸다. 언제 나갔었는지 처남이 머리 위에 호빵처럼 쌓인 눈을 그대로 얹은 채 들어왔다. 어딘가에서 또 물건하나 보고 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눈도 오는데 오늘은 그만 퇴근들 하지 뭐. 매제! 참 오늘은 오랜만에 내가 술 한잔 사죠. 어때요?"
    "술이요?"
    "매제 때문에 껀수 올린 것두 많은데 제대로 인사도 못 차렸잖아요. 한 식구라고 해도 그 동안 좀 서운했죠? 오늘 멋있게 한잔 빨아 봅시다."

    처남에게 이끌려 난 생전 처음 룸살롱 갔다. 근방에선 손꼽히는 집이라 했다. 술시중을 들러 들어온 여자아이들이 금방 만들어낸 인형처럼 앳되고 아름다웠다. 내 가슴은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져 술에 찌든 채 패배와 자책감을 불러내고 있었다. 기계처럼 하녀처럼 술시중을 드는 여자아이들 앞에서 난 고상한 척 잠시 혼돈에 빠졌다. 가식이었다. 그냥 미친 척 놀아 젖혔다. 내 스스로는 다시는 못 와 볼 곳이 분명했으므로.

    "야아, 매제 잘 노네. 놀아본 솜씨 같은데. 그 월급으로 많이 쏟고 다녔나봐."
    "다 술기운이죠. 참 이거 처한테 비밀 보장되는 거죠?"
    "그럼! 같이 있는 난 통뼈인가. 참 그리고 매제가 알아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무슨 말인데 그래요?"
    "뭐 대단한 건 아닌데. 우리도 컴퓨터 한 대 들여놓으려고. 요즘엔 그거 없는 사무실이 없다고 하더군. 인터넷인가 하는 것도 죽인다던데. 신문기사도 컴퓨터로 볼 수 있다며? 하여튼 이것저것 만능이래."
    "그렇다고 하대요. 신문에서 보긴 봤지만 저도 컴맹이라. 아마 배워서 익숙하지 않으면 더 불편할 걸요. 전 컴퓨터는 좀..."
    "아냐, 모르는 소리야. 이 바닥에서도 컴퓨터로 일을 시작한 지가 언젠데. 장부 정리도 그렇고 꼭 필요하다고들 하던데 뭐."
    "...그럼 들여놓아 야죠..."
    "그게 좋겠지? 매제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

    눈을 핑계삼아 꼭지가 돌아가도록 매제와 난 술을 마셨다. 하지만 처남이나 나나 그 자리가 보통의 술자리가 아니었음은 서로의 느낌만으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위기였다. 하지만 아무런 저항 능력도 없었으므로 흐르는 대로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분명한 건 매제가 2차를 권하며 여자를 붙여줬지만 끝내 뿌리친 일뿐이었다.

    갈증을 못 이겨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다. 오늘은 오후 출근을 하기로 하고 술을 마신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난 거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물을 찾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가 집이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순간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처가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었다. 출근을 했을 수도 있고 늦도록 안 들어온 내게 화가 나서 처가에 가서 잤을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녀의 잔 그림자들조차 발견할 수 없었을까. 처는 항상 옷을 갈아입을 때 벗은 옷은 옷장 옆 옷걸이에 아무렇게나 던져두는 버릇이 있었다. 화장을 하고 나면 화장대 옆에 휴지를 아무렇게나 버려 두었었다. 그녀는 속옷을 벗으면 화장실 빨래 바구니에 던져놓곤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아무 것도 없이 너무 깨끗하다. 내가 전날 청소해 놓은 그대로.

    쓰라린 속을 달래기 위해 물부터 한잔 마셨다. 양 손끝이 떨릴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적은 없었다. 5년 간의 결혼 생활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해도 그녀는 외박만은 단 한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분명 처가에 갔을 것이다. 아니면 어디로 갔겠는가' 그랬다면 자신의 오빠와 술을 마신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벌써 전화가 왔을 일이다. 자동응답 전화기에는 수신 메시지조차 없다. 긍정적인 것은 그쯤에서 끝나버렸다. 갑자기 그녀가 외박을 할 이유는 없다고 믿었지만 출소 이후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못 이끌어온 나는 한편으로 처가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한참동안 고민을 했다.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여보세요. 안영주씨 좀 부탁드립니다."
    "네, 안영주예요."
    아무 일 없다는 듯 일하고 있는 그녀 때문에 순간적으로 나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을 뻔했다. 착각은 금방 풀어졌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제 안 들어 왔었어?"
    "저녁에 얘기하죠."
    "외박했냐고 묻잖아?"

    목소리가 하도 거칠고 모질게 끌려서 목구멍이 쓰라릴 정도였다.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저녁까지 기다릴 수 없는 기분이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난 출근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만난 이상, 일상까지 거부해서는 안될 것 같아서였나보다.

    출근을 했다. 내 책상 위에 컴퓨터가 턱하니 놓여 있었다. 너무도 재빠른 일 처리였다. 경리 여직원이 내 자리에 앉아 카드가 나오는 오락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곤 못내 아쉬운 입맛을 다시곤 자리에서 어렵게 일어났다. 컴퓨터가 차지하고 남은 내 책상의 공간은 몹시 협소했다. 변함 없이 난 신문을 챙겨들었다. 스크랩을 시작했다. 일을 하지 않고는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조차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촌 5만평 택지개발, 안동 등 지방 9곳도, 회사채 보증 증권사 큰 손해...'
     
    될 수 있는 한 일을 빨리 끝내고 처남에게 양해를 구한 뒤 일찍 퇴근하리라 마음먹었다. 처남은 전화로 사무실 상황만 점검하곤 출근을 하지 않았다. 숙취가 심한 모양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두 시간쯤 기다렸을 때 그녀가 나타났다.

    "일찍 들어오셨네요?"
    냉랭한 목소리였다. 선수를 친 것일까. 화가 난 것은 당연히 나였어야 했음에도 오히려 난 주눅든 꼴을 하고 있었다.
    "말해봐. 외박했었어?"
    "그래요. 왜요?"
    "어디서? 누구하고?"

    가정을 꾸린 남자치고는 난 가지 말아야 할 가장 비참한 장면까지 들어가 있었다. 외박한 아내의 행적을 묻고 있는 남자의 모습.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내겐 그것이 최선의 모습이었다.

    "배운 사람도 이런 땐 별다르지 않군요. 우린 그냥 5년을 함께 보내온 것뿐이죠. 안 그래요? 우리가 부부라고 정말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니죠. 아마 부부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난 내가 선택한 당신이 조금만이라도 잘난 사람이 되길 바랬어요. 또 잘난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니었죠. 그걸 아는데 5년이나 걸린 게 서러워."
    "무슨 소리야! 그래도 우린 잘 살았어. 또 당신이 하라는 대로 난 다 해왔잖아. 요즘엔 돈도 벌었고."
    "잘 살았어? 생각날 때마다 1년에 고작 섹스 몇 번 한 걸로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어요? 돈? 당신이 돈을 벌어? 그게 다 누구 돈인데. 결국 우리 집에서 가져다 쓰는 거 아냐?"
    "... ..."
    "그동안은 그냥 살았지만 이젠 아니야. 빨강물 들은 놈하고는 끝이라고. 당신은 아무리 머릿속을 세탁해도 여전히 그 색깔에 그 생각일거야. 대학생? 이젠 그 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해."
    "뭐? 포기하려면 진작 포기하지 왜 이제 와서 그래? 난 떠날 기회도 줬었어. 네가 안 떠난 거야. 이리저리 때묻게 한 사람이 누군데 이제 와서 다 내 탓이지? 바람이 났으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
    "그래, 넌 남자답지 못해. 자기 잘못조차 모르는 사람이야. 당신은."

    그녀는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듯 한치의 오차도 흔들림도 없는 말투와 감정을 적절히 잘도 다스리고 있었다. 떨고 있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었다.

    "달라질 줄 알았어. 잡혀갔을 때 물론 실망도 컸지만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을 줄 알았어. 또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니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희망을 가졌어. 하지만 당신은 그 알량한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제대로 하는 일이라곤 없더라고. 당신은 그저 오빠가 마련해준 자리에서 신문 쪼가리나 오리는 일에 아주 만족해하는 타고난 백수 같았어. 아기 유산된 줄 알았지? 아기는 유산된 게 아닐 뗀 거야. 전과자의 자식을 낳을 순 없었으니까. 당신은 그 이후에도 애를 가질 생각은 없어 보였어. 내 말이 틀려? 데모했다는 사람들 말이야. 국회의원도 되고 소설가도 되고 다 잘만 되더라.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뭐야?"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기 일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또 한가지 국회의원이 되고 소설가도 된 사람들은 그 만큼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었나 보지. 사실 난 그 시대를 팔아먹을 만큼 많은 일을 한 놈은 못돼. 난 그저 재수 없었던 평범한 사람중의 하나였겠지."    
    "그래! 이제야 솔직해지네. 당신은 그런 엉뚱한 생각으로 위안 받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야. 시대 대신에 당신은 처자식을 팔아먹었잖아. 그건 어떻게 생각해? 굶고는 못사는 거야. 얘긴 이제 그만해. 짐은 나중에 실어 갈 거야. 아파트는 당신이 가져."

    이별을 끝냈다. 붙잡아야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녀는 나로 인해 정말 충분히 고통받았다고 인정했다. 휙 돌아 나가는 처의 뒷모습에서 난 난생 처음 그녀를 보는 것 같은 낯선 느낌이 들었다. 낯설었지만 아름다웠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할 것 같던 뜨거운 거리에서 매운 연기에 눈물 흘리며 발견했던 무지개처럼.

    처남에게 전화를 하고 며칠 쉬겠다고 했다. 이미 동생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텐데 그는 평소처럼 떠들썩한 목소리로 그렇게 하라고 했다. 방엔 언젠가처럼 또 혼자 남았다. 소모전. 내가 살아온 20대는 소모전이었다. 최루탄, 구속, 비디오와 함께 뒤섞여버린 신세대도 못되고 구세대도 아닌 엉덩이에 뿔난 세대의 일원으로 있는 힘만 모두 써 버리고 나앉은.

    사흘만에 출근을 했다. 처남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안 나와야 할 사람이었는데 왜 왔을까 하는 의문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나 역시 일을 하겠다고 출근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3년 동안 계속해온 스크랩쪼가리들이 방구석에 홀로 앉아 있자니 웅성웅성 귓속을 떠돌며 돌아다녔다. 한번은 그들을 보아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컴퓨터는 내 책상을 완전히 점령하고 제것인양 눌러앉아 있었다. 책상 서랍을 열자 자와 칼, 가위, 풀들이 주인 없는 며칠 간을 원망하듯 뒹굴고 있었다. 그것들을 챙겨 들려고 했을 때 처남이 나를 불렀다. 

    "저어기 말이야. 얘긴 들어서 알고 있어.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부부란 게 헤어지면 남남이라고 하더라고. 자네나 내 동생이나 아직은 젊으니까 잘 살 수 있을 거야. 사실 자네는 내 동생 고생만 시켰잖아. 지금이라도 헤어진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야. 자네 독립심도 키울 수 있고 그리고 이젠 스크랩도 필요 없을 것 같아. 컴퓨터로 들어가면 웬만한 건 다 건질 수 있다고. 저렇게 너저분하게 오려서 쌓아두지 않아도 되고. 왜 지난번에 한번 얘기했었지. 나도 이제 컴퓨터 배우고 있잖아.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 매제, 아니 이제 매제가 아니지. 자네도 컴퓨터나 배워보지 그래. 취직도 잘된다던데. 자네가 말한 정보. 그래 그건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어."
    "그렇게 어렵게 말 안 하셔도 돼요. 저도 더는 일할 생각 없어요. 어차피 없던 자리 억지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봐 주신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요."

    조용히 난 일어서 미처 못 챙긴 3년 동안의 친구들을 서류봉투 한 장에 몰아서 담았다. 그리고 한쪽으로 가지런히 놓여있는 스크랩뭉치들을 보았다. 저것들은 이제 쓰레기로 전락하리라. 사무실 문을 밀고 나오면서 멍청한 생각 하나가 슬며시 스쳐갔다. '아내가 떠나지 않았더라도 난 컴퓨터에 자리를 내주고 밀려났을까.' '내가 그 동안 해온 일은 기생에 불과했을까'

    회사 앞 횡단보도에 서서 파란 불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몹시 바빠 보인다. 난 이제부터 할 일이 없는데. 경리 여자아이가 불쑥 큰 소리로 아는 체를 했다. 

    "가시는 거예요. 은행에 갔다 오는 길이었어요."
    "응. 열심히 잘 지내."
    "며칠 전에 못 나오신다고 전화하신 날, 사장님이 짤라버릴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밥만 축낸다고요. 저어, 그리고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사모님이요. 곧 결혼하실 거래요. 사장님 친구 분이래요. 건설회사 사장이라던데. 오래됐데요. 사귄지."
    "그으래... 나보다 더 자세히 아는군. 고마워."

    파란 불이 들어왔다. 불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난 막 뛰기 시작했다. 차에 치어죽는 것이 두려워서나 경리 여자아이의 눈길에 부끄러움을 느껴서 만은 아니었다. 뛰면 뛸수록 숨이 가빠왔다. 빠르게 숨을 몰아쉬며 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단편소설 한 편을 떠올렸다.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이었다. 잘 시작된 하루가 종국엔 가장 억세게 재수 없는 날로 끝나나는 반전이 가장 맘에 들었었다. 아서 걷는 사람들을 하나, 둘 휙휙 제치며 앞으로 빠져나가던 난 그 소설 속의 인력거꾼이 내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묘하게 좋은 운을 하나, 둘 잡아가며 잘 살아 온 것 같았고 인력거꾼처럼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종국엔 죽어버린 마누라만 없을 뿐 어쩌면 인력거꾼보다 더 비참해졌다.

    눈금 없는 자가 속도를 못이기고 길바닥위로 떨어져 먼저 반쪽이 났다. 뚫어진 봉투 밑구멍으로 칼, 가위, 풀들도 한번에 쏟아져 나뒹굴었다. 하지만 난 계속해서 뛰었다. 뒤돌아 서서 주워 담기엔 내가 너무 멀리 와 있다고 생각했다. 또 나는 어디서 멈춰 서야 할지도 모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크랩을 계속 할 일은 없을 것이란 확신 때문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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